블랙홀 사건의 지평선 안에서 바깥이 보이는 3가지 이유

안에서는 바깥이 보인다

블랙홀 시리즈를 쓰면서 사건의 지평선은 빛도 못 빠져나오는 경계라고 여러 번 썼어요. 근데 글을 쓰다 보니까 하나 걸리는 게 있더라고요. 빛이 못 나온다는 건 알겠는데, 빛이 들어오는 건 어떻게 되는 거냐. 사건의 지평선 안에 있는 사람이 바깥을 볼 수 있느냐. 찾아보니까 답이 의외였어요. 볼 수 있어요.


사건의 지평선은 일방통행이다

첫 번째 이유가 이거예요. 사건의 지평선은 벽이 아니에요. 물리적인 장벽이 있는 게 아니라 빛의 탈출 가능 여부가 바뀌는 경계예요. 안에서 바깥으로는 못 나가지만, 바깥에서 안으로는 들어올 수 있어요. 일방통행 문이에요.

바깥 우주에서 출발한 빛이 블랙홀로 향하면 사건의 지평선을 그대로 통과해서 안으로 들어와요. 지평선에서 뭔가에 튕기거나 차단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사건의 지평선 안에 있는 관측자는 바깥에서 들어오는 빛을 받을 수 있고, 바깥 우주를 볼 수 있어요.

저는 사건의 지평선 안이면 깜깜할 줄 알았거든요. 빛이 안 나오니까 안도 어두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바깥에서 안을 보는 관점이었어요. 안에서 바깥을 보는 건 다른 문제예요.

자유낙하하는 사람은 지평선을 못 느낀다

두 번째 이유예요. 초대질량 블랙홀에 자유낙하로 떨어지는 사람은 사건의 지평선을 넘는 순간을 물리적으로 느끼지 못해요. 이건 이전 글에서도 다뤘는데, 조석력이 약해서 몸이 안 찢기는 것뿐 아니라 시공간 자체가 그 지점에서 특별히 달라지는 게 없거든요.

아인슈타인의 등가 원리라는 게 있어요. 자유낙하하는 사람은 무중력 상태와 구분이 안 된다는 거예요. 엘리베이터 줄이 끊어져서 떨어지는 사람은 잠깐 무중력을 경험하잖아요. 블랙홀에 떨어지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자유낙하하는 한 주변 공간은 평범해 보여요. 빛도 평소처럼 움직이고요.

그러니까 사건의 지평선을 넘기 직전에 바깥 우주가 보였다면, 넘은 직후에도 여전히 보여요. 갑자기 화면이 꺼지는 게 아니에요. 바깥에서 들어오는 빛은 계속 따라오니까요.

바깥 우주가 머리 위로 좁혀진다

세 번째 이유는 좀 더 구체적인 얘기예요. 바깥이 보이긴 하는데 평소와 같은 모습은 아니에요. 블랙홀 안으로 떨어지면서 바깥 우주의 빛이 머리 위 방향으로 점점 몰려요. UC 버클리 천문학과 자료에 따르면 바깥 우주가 점점 작은 각도로 좁혀지면서 머리 위의 작은 원 안에 모여든대요.

이건 빛의 수차 현상 때문이에요. 블랙홀을 향해 빠르게 떨어지면 빛이 진행 방향으로 몰리는 효과가 생겨요. 비 오는 날 빠르게 달리면 비가 앞에서만 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원리예요. 떨어지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바깥 우주는 머리 위의 점점 작은 영역으로 압축돼요.

동시에 바깥에서 들어오는 빛의 시간 흐름이 빨라 보여요. 바깥 우주의 시간이 가속되는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다만 이건 슈바르츠실트 블랙홀, 그러니까 회전하지 않는 블랙홀 기준이에요. 회전하지 않는 블랙홀에 자유낙하하면 바깥 우주를 볼 수는 있지만 무한한 미래까지 다 보이지는 않아요. 유한한 시간 동안 유한한 양의 바깥 빛을 보다가 특이점에 도달해요.

회전하는 블랙홀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회전하는 커 블랙홀에서는 사건의 지평선 안에 코시 지평선이라는 두 번째 경계가 있어요. 이전 특이점 글에서 잠깐 다뤘는데, 이 코시 지평선 근처에서는 상황이 극단적으로 변해요.

이론적으로 코시 지평선에 접근하면 바깥에서 들어오는 빛이 무한히 청색편이돼요. 바깥 우주의 시간이 무한히 빨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우주의 전체 역사가 한꺼번에 펼쳐지는 셈이에요. 그리고 이 무한히 압축된 빛의 에너지가 어마어마하게 커져서 코시 지평선에 도달하기 전에 복사 에너지로 파괴될 거라는 계산도 있어요.

다만 이건 이상화된 해석이에요. 실제로 코시 지평선이 안정적으로 존재하는지 자체가 논란이거든요. 대부분의 물리학자는 코시 지평선이 불안정해서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봐요.

바깥에서 안을 보는 건 불가능하다

반대 방향은 안 돼요. 안에서 바깥은 보이지만, 바깥에서 안은 절대 볼 수 없어요. 사건의 지평선 안에서 출발한 빛은 아무리 바깥을 향해 쏴도 결국 특이점 방향으로 끌려가거든요. 이전 글에서 다뤘듯이 사건의 지평선 안에서는 공간의 한 방향이 시간처럼 한쪽으로만 흐르니까, 바깥으로 가는 것 자체가 과거로 가는 것처럼 불가능해져요.

바깥 관측자가 블랙홀에 떨어지는 물체를 지켜보면 물체가 사건의 지평선에 다가갈수록 점점 느려지고, 점점 붉어지고, 점점 어두워져요. 시간지연과 중력적 적색편이 때문이에요. 결국 너무 어두워져서 안 보이게 되는데, 이론적으로는 사건의 지평선에 도달하는 걸 영원히 볼 수 없어요. 무한한 시간이 지나도요.

비대칭이 핵심이다

정리하면 이래요. 사건의 지평선은 빛을 한쪽으로만 통과시키는 일방통행 경계예요. 바깥에서 안으로는 들어오지만, 안에서 바깥으로는 나갈 수 없어요. 그래서 안에 있는 사람은 바깥 우주를 볼 수 있고, 바깥에 있는 사람은 안을 볼 수 없어요.

저는 블랙홀 안이 완전한 암흑일 줄 알았어요. 근데 오히려 바깥 우주가 머리 위로 압축돼서 보이고, 바깥 시간이 빨라지는 것처럼 보인대요. 물론 그걸 오래 볼 시간은 없어요. 특이점까지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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