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홀은 정말 존재할까, 블랙홀의 반대는 가능한가

블랙홀의 반대가 있다는 얘기

블랙홀 시리즈를 꽤 오래 써왔어요. 형성 원리, 스파게티화, 시간지연, 특이점, 광자고리까지. 근데 한 번도 안 다룬 게 있었어요. 화이트홀. 블랙홀이 모든 걸 빨아들이는 천체라면, 화이트홀은 모든 걸 뱉어내는 천체라는 건데, 이름은 들어봤지만 진지하게 찾아본 적이 없었어요. 이전 글에서 양자 바운스 얘기를 할 때 잠깐 스쳤는데, 이번에 좀 더 파봤어요.


수학적으로는 블랙홀과 동시에 나온다

화이트홀은 공상과학에서 나온 게 아니에요. 일반 상대성 이론의 방정식을 풀면 블랙홀 해와 함께 자동으로 나오는 해예요. 1916년에 슈바르츠실트가 아인슈타인 방정식을 풀었을 때, 이 해를 최대한 확장하면 블랙홀 영역과 화이트홀 영역이 같이 나타나거든요. 크루스칼 좌표계라는 걸로 보면 시공간 다이어그램에서 블랙홀의 시간 역전 대칭에 해당하는 부분이 화이트홀이에요.

쉽게 말하면 블랙홀은 사건의 지평선을 통해 안으로만 들어올 수 있는 천체예요. 화이트홀은 반대로 사건의 지평선을 통해 바깥으로만 나갈 수 있는 천체예요. 안으로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고, 안에 있는 건 전부 밖으로 나와요. 블랙홀의 시간을 거꾸로 돌린 것과 같아요.

근데 수학적으로 가능하다는 것과 실제로 존재한다는 건 다른 문제예요. 수학에서는 허용되지만 자연에서는 만들어지지 않을 수 있거든요.

고전적으로는 존재하기 어렵다

화이트홀이 존재하기 어렵다고 보는 이유가 몇 가지 있어요.

첫째,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할 수가 없어요. 블랙홀은 별이 죽으면서 만들어지잖아요. 형성 과정이 분명해요. 화이트홀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건지 알려진 게 없어요. 최대 확장 슈바르츠실트 해에서 나오는 화이트홀은 태초부터 존재해야 하는 설정이에요. 자연스러운 형성 과정이 없어요.

둘째, 불안정해요. 화이트홀이 물질을 뱉어내면 그 물질이 주변에 쌓이잖아요. 그 물질의 중력이 화이트홀을 감싸면서 결국 블랙홀이 형성돼요. 화이트홀이 자기가 뱉어낸 것으로 인해 블랙홀이 되는 셈이에요. 지속적으로 존재하려면 음의 에너지가 주변을 감싸줘야 하는데, 음의 에너지는 오래 유지될 수 없다고 알려져 있어요.

셋째, 호킹 복사가 나왔어요. 블랙홀이 물질을 영원히 가두는 게 아니라 복사를 통해 서서히 증발한다는 게 밝혀지면서, 블랙홀의 정보가 빠져나오기 위해 화이트홀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약해졌어요.

그래서 한동안 화이트홀은 수학적 호기심 정도로만 취급됐어요.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고요.

카를로 로벨리가 다시 꺼냈다

근데 최근에 화이트홀을 다시 진지하게 다루는 물리학자가 있어요. 루프 양자중력의 대표적 연구자인 카를로 로벨리예요. 2023년에 화이트홀이라는 제목의 책까지 냈고, 2025년 2월에는 NASA 고다드 우주비행센터에서 강연도 했어요.

로벨리의 시나리오는 이래요. 이전에 특이점 글에서 다뤘던 양자 바운스 기억나실 거예요. 루프 양자중력에서는 블랙홀 내부에서 물질이 극도로 압축되면 특이점에 도달하는 대신 양자 효과로 반발력이 생겨서 다시 튕겨 나간다는 거였어요. 로벨리는 이 바운스가 일어나면 블랙홀의 내부가 화이트홀의 내부로 전환된다고 주장해요.

과정을 좀 더 들여다보면 이래요. 별이 붕괴해서 블랙홀이 돼요. 블랙홀 내부에서 물질이 쪼그라들다가 플랑크 길이, 그러니까 물리적으로 의미 있는 최소 크기에 도달하면 바운스가 일어나요. 시간의 방향이 뒤집히면서 블랙홀의 내부가 화이트홀의 내부가 돼요. 그 뒤 물질이 다시 바깥으로 나와요.

바깥에서는 엄청나게 오래 걸린다

여기서 좀 이상한 점이 있어요. 블랙홀 내부에서는 바운스가 순식간에 일어날 수 있는데, 바깥에서 보면 이 과정이 어마어마하게 오래 걸려요. 이전 시간지연 글에서 다뤘듯이 사건의 지평선 근처에서는 시간이 극도로 느려지니까요. 블랙홀 안에서의 짧은 순간이 바깥에서는 우주 나이보다 긴 시간이 될 수 있어요.

로벨리의 계산에 따르면 이 전환이 완료되려면 호킹 복사로 블랙홀이 충분히 줄어들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블랙홀이 플랑크 질량, 그러니까 약 0.02mg 수준까지 줄어들면 전환이 마무리되면서 작은 화이트홀 잔해가 남는대요. 이 잔해를 플랑크 별이라고 불러요.

저는 이 부분이 좀 의외였어요. 화이트홀이 블랙홀의 최종 단계라는 거잖아요. 블랙홀이 따로 있고 화이트홀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천체가 시간이 지나면서 블랙홀에서 화이트홀로 바뀐다는 시나리오예요.

암흑물질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로벨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가요. 초기 우주에서 만들어진 작은 블랙홀들이 지금쯤 화이트홀 잔해, 그러니까 플랑크 질량 수준의 화이트홀로 전환됐을 수 있다는 거예요. 이 잔해들은 중력만 가지고 있고, 빛을 내지 않고, 어둡고, 안정적이에요.

이 특징이 암흑물질의 특성과 맞아요. 암흑물질도 중력만 작용하고 빛과 상호작용하지 않거든요. 로벨리는 2024년 강연에서 만약 초기 우주에 작은 블랙홀이 충분히 많았다면, 그것들이 화이트홀 잔해가 되어 암흑물질의 정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어요.

솔직히 이건 가설 위에 가설을 쌓은 거예요. 루프 양자중력이 맞아야 하고, 양자 바운스가 실제로 일어나야 하고, 초기 우주에 작은 블랙홀이 충분히 많았어야 해요. 검증해야 할 전제가 너무 많아요. 다만 로벨리 같은 수준의 물리학자가 진지하게 연구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완전히 무시할 주제는 아니라는 뜻이라고 저는 봐요.

관측으로 확인할 수 있나

현재로서는 화이트홀이 관측된 적이 없어요. 바깥에서 보면 화이트홀의 외형은 블랙홀과 구분이 안 된다고 해요. 둘 다 중력으로 주변 물질을 끌어당기거든요. 차이는 사건의 지평선에서의 행동인데, 이건 바깥에서 직접 관측하기 어려운 영역이에요.

로벨리 팀은 플랑크 질량 화이트홀 잔해가 지구를 통과할 때 양자 검출 기술로 감지할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을 제시했어요. 다만 이건 아직 구체적인 실험 설계 단계가 아니에요.

빅뱅 자체를 화이트홀의 한 형태로 보는 시각도 있어요. 우주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뱉어냄에서 시작됐다는 건데, 이건 비유에 가까운 해석이에요.

수학은 허용하지만 자연은 아직 답이 없다

화이트홀은 일반 상대성 이론이 수학적으로 허용하는 해예요. 고전적으로는 형성 과정이 없고 불안정해서 존재하기 어렵다고 봤어요. 근데 양자중력을 적용하면 블랙홀이 바운스를 거쳐 화이트홀로 전환될 수 있다는 새로운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어요. 다만 이 시나리오를 뒷받침하는 양자중력 이론 자체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관측 증거도 없어요.

이 시리즈를 쓰면서 블랙홀은 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가 계속 나와요. 특이점 대신 양자 바운스, 호킹 복사로 증발, 그리고 이번에는 화이트홀로의 전환. 블랙홀에 빠진 물질이 영원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 언젠가는 다시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 확인은 안 됐지만, 방향 자체는 흥미로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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