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충돌
블랙홀 시리즈를 쓰면서 블랙홀 하나에 대한 얘기만 했어요. 구조, 특이점, 그림자, 시간지연. 근데 블랙홀이 둘이 만나면 어떻게 되는지는 안 다뤘더라고요. 블랙홀끼리 충돌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이건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관측된 현상이에요. 2015년에 처음 잡혔고, 지금은 LIGO가 약 3일에 한 번씩 블랙홀 병합 신호를 감지하고 있어요.
서로를 향해 나선을 그리며 다가간다
블랙홀 두 개가 가까이 있으면 서로의 중력에 이끌려서 쌍성계를 이뤄요. 서로를 돌면서 공전하는 거예요. 근데 이 과정에서 에너지가 빠져나가요. 중력파라는 형태로요.
중력파는 시공간의 잔물결이에요. 무거운 물체가 가속 운동을 하면 시공간이 출렁이면서 파동이 퍼져나가는 건데, 두 블랙홀이 서로를 돌 때 이 파동이 에너지를 가지고 밖으로 나가요. 에너지가 빠져나가니까 궤도가 줄어들어요. 점점 가까워지는 거예요.
처음에는 아주 천천히 가까워져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에너지 손실이 미미하니까요. 근데 가까워질수록 공전 속도가 빨라지고, 중력파 방출이 급격히 강해져요. 마지막에는 거의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서로를 돌아요. 이 단계를 나선 추락이라고 해요.
마지막 0.2초에 모든 게 몰려 있다
2015년 9월 14일에 LIGO가 처음 잡은 신호가 GW150914예요. 13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태양 질량의 36배와 29배인 두 블랙홀이 충돌한 거예요. LIGO가 실제로 감지한 신호의 길이가 약 0.2초예요.
이 0.2초 안에 두 블랙홀이 나선을 그리며 접근하고, 병합하고, 하나의 블랙홀로 안정되는 전 과정이 담겨 있어요. 신호의 주파수가 점점 높아지다가 정점에서 뚝 끊기는 패턴인데, 이걸 처프 신호라고 불러요.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래요.
0.2초라는 게 좀 안 와닿을 수 있는데, 그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의 규모를 보면 좀 다르게 느껴져요.
태양 3개가 에너지로 바뀌었다
GW150914에서 두 블랙홀의 질량을 합치면 태양의 65배예요. 근데 병합 후 남은 블랙홀의 질량은 태양의 62배였어요. 태양 질량 3배가 사라진 거예요. 어디로 갔느냐. 중력파 에너지로 바뀌어서 우주 공간으로 퍼져나갔어요.
태양 질량 3배를 에너지로 환산하면 약 5.4 곱하기 10의 47승 줄이에요. 이 에너지가 주로 마지막 0.2초 안에 방출됐어요. 순간 출력으로 따지면 관측 가능한 우주의 모든 별이 내는 빛을 합친 것보다 강했대요. 우주에서 일어나는 사건 중 에너지 출력이 가장 큰 현상이에요.
그런데도 지구에서 감지된 시공간의 변화는 양성자 지름의 1000분의 1 수준이었어요. 13억 광년을 날아오는 동안 그만큼 약해진 거예요. LIGO가 그걸 잡아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예요.
병합 과정은 세 단계다
블랙홀 충돌은 세 단계로 나뉘어요.
첫째, 나선 추락 단계예요. 두 블랙홀이 서로를 돌면서 중력파를 내보내고 점점 가까워지는 과정이에요. 이 단계는 수학적으로 잘 풀려요. 뉴턴 역학에 상대론적 보정을 추가하면 꽤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어요.
둘째, 병합 단계예요. 두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이 만나서 하나로 합쳐지는 과정이에요. 이 단계는 중력이 극단적으로 강해서 근사 계산이 안 돼요. 슈퍼컴퓨터로 수치적 상대성 시뮬레이션을 돌려야만 풀 수 있어요. 2005년에야 이 시뮬레이션이 성공했고, 그 덕분에 LIGO가 신호를 해석할 수 있었어요.
셋째, 링다운 단계예요. 합쳐진 블랙홀이 찌그러진 형태에서 안정적인 커 블랙홀로 진정되는 과정이에요. 종을 쳤을 때 울림이 점점 줄어드는 것처럼, 시공간의 진동이 감쇠하면서 깨끗한 회전 블랙홀이 돼요.
2025년에 역대 가장 선명한 신호가 잡혔다
2025년 1월 14일에 LIGO가 GW250114라는 신호를 잡았어요. 역대 가장 선명한 블랙홀 병합 신호라고 해요. 2015년 첫 관측이 속삭임이었다면 이번 건 큰 소리에 가깝다는 표현을 쓰더라고요.
이 신호가 중요한 건 두 가지 이론을 처음으로 확인했기 때문이에요. 하나는 호킹의 면적 정리예요. 블랙홀이 병합하면 새로운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표면적이 합치기 전 두 블랙홀의 표면적 합보다 커야 한다는 정리인데, 이번 관측에서 확인됐어요. 다른 하나는 커 계량의 검증이에요. 병합 후 남은 블랙홀이 질량과 자전이라는 두 가지 값만으로 완전히 기술된다는 건데, 이것도 맞았어요.
병합 결과 태양 질량의 약 63배짜리 블랙홀이 만들어졌고, 이 블랙홀은 초당 약 100번 회전하고 있대요.
빛은 안 나온다
블랙홀끼리의 충돌은 중력파만 내보내고 빛은 안 나와요. 블랙홀에는 표면이 없으니까요. 충돌해도 불꽃이 안 튀는 거예요. 이전에 쓴 실패한 초신성 글에서 별이 폭발 없이 블랙홀이 되는 얘기를 했었는데, 블랙홀 병합도 마찬가지예요. 극단적인 사건인데 빛으로는 안 보여요.
중성자별끼리의 충돌은 달라요. 2017년에 관측된 GW170817은 중성자별 두 개가 충돌한 건데, 이때는 중력파와 함께 킬로노바라는 폭발이 일어나서 빛이 나왔어요. 감마선부터 적외선까지 전 파장대에서 관측됐어요. 중성자별에는 물질이 있으니까요.
블랙홀 병합은 중력파로만 볼 수 있어요. 그래서 LIGO가 없었으면 이 현상을 알 수가 없었어요.
시공간이 찢어지는 게 아니다
블랙홀 충돌이라고 하면 뭔가 파괴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실제로 일어나는 건 좀 달라요. 두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이 만나서 하나의 더 큰 사건의 지평선으로 합쳐지는 거예요. 시공간이 극단적으로 왜곡되면서 진동하고, 그 진동이 중력파로 퍼져나가고, 마지막에 깨끗한 회전 블랙홀 하나가 남아요.
이 시리즈에서 블랙홀의 성질은 질량과 자전으로 결정된다고 여러 번 썼어요. 병합 전 두 블랙홀이 각각 어떤 역사를 가졌든, 병합 후에는 질량과 자전만 남아요. 나머지 정보는 전부 중력파로 방출돼요. 이걸 무모 정리라고 부르더라고요. 블랙홀에는 머리카락이 없다는 뜻이에요. 개성이 없다는 비유예요.
0.2초 만에 태양 3개 분량의 에너지를 내보내는 게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사건인데, 중력파가 아니었으면 몰랐을 거예요. 블랙홀은 극단적인 천체인데 극단적으로 조용하기도 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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