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에서 정보가 사라지면 안 되는 이유
블랙홀 시리즈를 쓰면서 호킹 복사 얘기를 몇 번 했어요. 블랙홀이 서서히 증발해서 결국 사라진다는 거. 근데 그때마다 한 가지 문제를 슬쩍 넘겼거든요. 블랙홀이 완전히 증발하면 안에 들어갔던 물질의 정보는 어떻게 되느냐. 이걸 블랙홀 정보 역설이라고 하는데, 50년 넘게 물리학에서 가장 논쟁적인 문제 중 하나예요. 호킹과 서스킨드가 30년 가까이 싸웠고, 호킹이 결국 자기가 틀렸다고 인정한 적도 있어요. 이번에 이걸 좀 제대로 파봤어요.
정보라는 게 뭔데
여기서 말하는 정보는 일상적인 의미와 좀 달라요. 물리학에서 정보란 어떤 물체의 상태를 완전히 기술하는 데 필요한 모든 데이터를 말해요. 원자가 뭐로 이루어져 있고, 각 입자가 어떤 에너지를 가지고 있고,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이 정보를 다 알면 원리적으로 그 물체의 과거와 미래를 알 수 있어요.
양자역학의 기본 원칙 중 하나가 정보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유니터리성이라고 부르는 성질인데, 쉽게 말하면 자연 법칙이 되돌릴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책을 불에 태우면 재가 되잖아요. 일상에서는 원래 책을 복구할 수 없어요. 근데 원리적으로는, 재와 연기와 열의 모든 입자 상태를 완벽하게 알면 시간을 되돌려서 원래 책을 복구할 수 있어요. 정보가 사라진 게 아니라 뒤섞여 있을 뿐인 거예요.
이게 물리학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 중 하나예요.
호킹 복사가 문제를 만들었다
1974년에 호킹이 블랙홀도 복사를 내보내며 증발한다는 걸 발견했어요. 이전 글에서 다뤘던 내용이에요. 사건의 지평선 근처에서 입자-반입자 쌍이 생기고, 하나는 바깥으로 나가고 하나는 안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블랙홀이 서서히 줄어드는 거예요.
문제는 이 복사가 열복사라는 거예요. 열복사는 온도에만 의존하고, 블랙홀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지 않아요. 블랙홀에 책을 던져 넣든 컴퓨터를 던져 넣든 나오는 복사는 똑같아요. 블랙홀의 질량과 전하와 자전만 같으면 구분이 안 돼요.
그러니까 블랙홀이 완전히 증발하면 안에 있던 물질의 정보는 어디로 가느냐. 호킹 복사에는 안 담겨 있고, 블랙홀은 사라졌으니까요. 정보가 사라진 거예요. 양자역학의 유니터리성이 깨진 거예요.
호킹은 처음에 정보가 정말 사라진다고 주장했어요.
서스킨드는 30년 동안 반대했다
스탠퍼드대학교의 레너드 서스킨드는 정보가 사라진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유니터리성이 깨지면 에너지 보존 법칙까지 위반될 수 있다는 거였거든요. 서스킨드와 네덜란드의 헤라르뒤스 엇호프트는 1990년대에 블랙홀 상보성이라는 개념을 제안했어요.
핵심은 이래요. 블랙홀에 떨어지는 사람과 바깥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보는 현실이 다르다는 거예요. 떨어지는 사람은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서 안으로 들어가요. 바깥에서 보는 사람은 떨어지는 사람의 정보가 사건의 지평선 표면에 퍼져서 저장되는 걸 봐요. 같은 정보가 안과 밖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 관측자가 동시에 같은 정보를 확인할 수 없으니까 모순이 아니라는 논리예요.
1997년에는 후안 말다세나가 AdS/CFT 대응이라는 걸 발견했어요. 높은 차원의 중력 이론과 낮은 차원의 양자장론이 수학적으로 같다는 건데, 이 프레임워크 안에서는 정보가 보존돼요. 이게 나오면서 정보가 보존된다는 쪽이 주류가 됐어요.
호킹이 인정했다
1997년에 호킹과 킵 손은 서스킨드의 제자 존 프레스킬과 내기를 했어요. 블랙홀에서 정보가 사라지느냐 보존되느냐. 호킹과 손은 사라진다에, 프레스킬은 보존된다에 걸었어요.
2004년에 호킹이 입장을 바꿨어요. 블랙홀 증발 과정이 유니터리하다고 인정하고, 정보가 보존된다는 쪽으로 돌아선 거예요. 내기에서 졌다면서 프레스킬에게 야구 백과사전을 줬어요. 정보를 마음대로 검색할 수 있는 물건을 준 거예요. 킵 손은 인정하기를 거부했대요.
저는 이 부분이 좀 인상적이었어요. 호킹 정도 되는 사람이 30년 가까이 유지했던 주장을 공개적으로 철회한 거잖아요.
그래도 어떻게 보존되는지는 몰랐다
정보가 보존된다는 건 대부분 동의하게 됐어요. 근데 어떤 메커니즘으로 보존되느냐는 다른 문제예요. 호킹 복사가 열복사처럼 보이는데 어떻게 정보를 담을 수 있느냐. 이걸 설명하려면 호킹 복사의 엔트로피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알아야 해요.
1993년에 돈 페이지라는 물리학자가 이걸 정리했어요. 정보가 보존된다면 호킹 복사의 얽힘 엔트로피는 처음에 올라가다가 블랙홀이 절반쯤 증발했을 때 정점을 찍고 내려와야 해요. 이걸 페이지 곡선이라고 불러요. 정보가 보존되는 블랙홀 증발의 올바른 엔트로피 변화 패턴인 거예요.
반면 호킹의 원래 계산대로라면 엔트로피는 계속 올라가기만 해요. 안 내려와요. 이러면 정보가 사라진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중력 이론 쪽에서 페이지 곡선을 재현할 수 있느냐가 핵심 과제였어요.
2019년에 돌파구가 나왔다
2019~2020년에 알마이리, 페닝턴, 말다세나 등 여러 연구팀이 거의 동시에 페이지 곡선을 중력 이론에서 재현하는 데 성공했어요. 아일랜드 공식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계산법이에요.
핵심 아이디어는 이래요. 블랙홀이 충분히 증발하면, 블랙홀 내부에 아일랜드라는 영역이 나타나요. 이 아일랜드 안의 정보가 바깥의 호킹 복사와 양자적으로 얽혀 있다는 거예요. 얽힘 엔트로피를 계산할 때 이 아일랜드를 포함시키면 엔트로피가 올라가다가 내려오는 페이지 곡선이 나와요.
쉽게 말하면 블랙홀 안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정보가 사실은 바깥의 복사와 연결돼 있어서, 복사를 다 모으면 원래 정보를 원리적으로 복구할 수 있다는 거예요. 정보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복사에 암호화돼 있다는 뜻이에요.
이건 중력 이론 안에서 준고전적으로 페이지 곡선을 유도한 최초의 결과라서, 정보 역설 연구에서 가장 큰 진전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어요.
아직 안 끝났다
아일랜드 공식이 페이지 곡선을 재현한 건 맞지만, 완전한 해결은 아니에요. 몇 가지 문제가 남아 있어요.
첫째, 이 계산이 AdS 시공간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주로 이루어졌어요. 우리 우주처럼 팽창하는 시공간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는 아직 검증 중이에요. 2022년 이후로 평탄한 시공간에서의 아일랜드 공식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완전히 정리되지는 않았어요.
둘째, 정보가 호킹 복사에 어떻게 암호화되는지 구체적인 메커니즘은 아직 모르겠어요. 페이지 곡선이 맞다는 건 알겠는데, 실제로 복사의 어느 부분에 어떤 정보가 들어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예요.
셋째, 로저 펜로즈 같은 물리학자는 여전히 정보가 실제로 사라질 수 있다는 입장이에요. 양자 측정 자체가 비유니터리한 과정이니까, 중력이 작용하는 상황에서 유니터리성이 깨지는 건 문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거라는 주장이에요.
방향은 잡혔지만 끝은 아니다
현재 물리학의 주류 의견은 정보가 보존된다는 쪽이에요. 호킹도 인정했고, AdS/CFT가 뒷받침하고, 아일랜드 공식으로 페이지 곡선도 나왔어요. 다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보존되는지는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았어요.
이 시리즈를 쓰면서 특이점, 호킹 복사, 화이트홀, 정보 역설까지 왔는데, 결국 같은 데로 수렴해요. 일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 이론이 한계에 부딪힌다는 거. 정보 역설도 그 충돌의 한 단면이에요. 완전한 양자중력 이론이 나오면 풀릴 문제인데, 그게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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