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 중심에 왜 항상 블랙홀이 있는 건지
블랙홀 시리즈를 쓰면서 은하 중심에는 초대질량 블랙홀이 있다는 말을 당연하게 깔고 갔어요. 궁수자리 A*는 태양의 400만 배, M87은 65억 배. 근데 한 번도 안 물어본 게 있었어요. 왜 거의 모든 은하의 중심에 초대질량 블랙홀이 있느냐. 우연이냐 필연이냐. 블랙홀이 먼저 있어서 은하가 그 주위에 모인 건지, 은하가 먼저 있고 중심에서 블랙홀이 만들어진 건지. 닭이냐 달걀이냐 문제예요. 찾아보니까 최근에 이 문제의 방향이 바뀌고 있더라고요.
블랙홀 질량과 은하가 비례한다
2000년에 발견된 관계가 하나 있어요. M-시그마 관계라고 하는데, 은하 중심 블랙홀의 질량과 그 은하 팽대부에 있는 별들의 속도 분산 사이에 아주 촘촘한 비례 관계가 있다는 거예요. 팽대부는 은하 중심부의 불룩한 부분이에요. 별들이 빠르게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영역이고, 이 움직임의 폭이 속도 분산이에요.
블랙홀 질량이 큰 은하는 팽대부 별의 속도 분산도 크고, 작은 은하는 작아요. 거의 정비례해요. 이게 왜 이상하냐면, 블랙홀의 중력이 직접 미치는 범위는 은하 전체에 비하면 아주 작거든요. 궁수자리 A*의 중력이 직접 영향을 미치는 범위는 은하 중심부의 아주 좁은 영역이에요. 그런데 은하 전체의 팽대부 성질과 블랙홀 질량이 깔끔하게 비례한다는 건, 둘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같이 자랐다는 뜻이에요.
저는 이 대목에서 좀 멈췄어요. 비유하자면 도시 한가운데 있는 작은 시청 건물 크기가 도시 전체 인구랑 정확히 비례하는 격이거든요. 시청은 도시의 아주 일부인데 말이죠. 상식적으로는 둘이 무관해야 하는데 깔끔하게 비례한다니까, 우연일 리가 없겠다 싶었어요. 뭔가 둘을 연결하는 메커니즘이 있다는 거잖아요.
이걸 공진화라고 불러요. 블랙홀과 은하가 독립적으로 자란 게 아니라 동반 성장했다는 거예요.
블랙홀이 은하의 별 형성을 조절한다
공진화의 핵심 메커니즘으로 지목되는 게 AGN 피드백이에요. AGN은 활동 은하핵이라는 뜻인데, 초대질량 블랙홀이 주변 물질을 활발하게 빨아들일 때 내는 에너지를 말해요. 강착 원반에서 나오는 복사와 제트가 엄청난 에너지를 주변에 쏟아내거든요.
이 에너지가 주변 가스를 가열하거나 은하 밖으로 밀어내요. 가스가 뜨거워지면 새로운 별이 만들어지지 않아요. 별이 태어나려면 차가운 가스가 중력으로 뭉쳐야 하는데, 블랙홀이 가스를 데워버리니까 별 형성이 멈추는 거예요. 이걸 부정적 피드백이라고 해요.
반대로 초기 단계에서는 블랙홀의 제트나 복사가 주변 가스를 압축해서 별 형성을 촉진할 수도 있어요. 이건 긍정적 피드백이라고 하고요.
결국 블랙홀이 은하의 별 형성 속도를 조절하는 밸브 역할을 하는 셈이에요. 너무 많이 빨아들이면 에너지를 뿜어서 별 형성을 멈추고, 에너지가 줄면 다시 가스가 유입되고. 이 자기 조절 과정이 M-시그마 관계를 만들어냈다는 게 현재 주류 설명이에요.
저는 이 설명을 보고 보일러 온도 조절기가 떠올랐어요. 너무 뜨거우면 꺼지고 식으면 다시 켜지면서 일정 온도를 유지하잖아요. 블랙홀이 은하한테 그 온도 조절기 같은 역할을 한다는 거예요. 빨아들이는 천체가 동시에 주변을 조절하는 장치라는 게, 시리즈 내내 블랙홀을 그냥 먹기만 하는 존재로 생각해온 입장에서는 좀 다르게 다가왔어요.
JWST가 순서를 뒤집었다
여기까지는 블랙홀과 은하가 같이 자랐다는 얘기예요. 둘 중 뭐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커왔다는 거죠. 근데 JWST가 올라가면서 이 그림이 좀 흔들리고 있어요.
JWST는 적외선 감도가 높아서 초기 우주의 은하를 볼 수 있거든요. 빅뱅 이후 7~8억 년밖에 안 된 시기의 천체들이 관측되고 있는데, 여기서 이상한 게 나왔어요. 이 시기에 이미 태양 질량의 수천만 배에서 수억 배 되는 블랙홀이 존재하는 거예요. 은하 자체는 아직 작은데 블랙홀이 비정상적으로 크더라는 거예요.
2026년 5월에 케임브리지대학교 연구팀이 발표한 결과가 대표적이에요. Abell2744-QSO1이라는 천체를 분석했는데, 블랙홀 질량이 태양의 5000만 배인 반면에 주변 은하의 별 질량은 블랙홀 질량의 절반에도 못 미쳤대요. 보통은 블랙홀이 은하 별 질량의 0.1~0.5% 수준인데, 이건 완전히 뒤집어진 거예요.
이 숫자가 좀 와닿게 표현하면, 보통 은하에서 블랙홀이 동전 한 닢이라면 은하는 집 한 채쯤 되는 비율이에요. 근데 이 초기 천체는 블랙홀이 은하보다 더 무거워요. 동전이 집보다 큰 셈이죠. 순서가 거꾸로라는 게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오니까, 연구팀이 블랙홀이 먼저 생겼다는 쪽으로 해석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싶었어요.
연구팀은 이 블랙홀이 은하의 별들보다 먼저 형성되고 성장했을 가능성을 제시했어요. 닭이냐 달걀이냐 논쟁에서 블랙홀이 먼저라는 쪽에 무게가 실리는 관측이에요.
작은 빨간 점들이 쏟아지고 있다
JWST가 초기 우주에서 발견한 이상한 천체들을 작은 빨간 점, 영어로 LRD라고 불러요. Little Red Dots. 적외선에서 붉고 작게 보이는 천체인데, 이것들 중 상당수가 거대한 블랙홀을 품고 있는 것으로 추정돼요.
이전 시리즈에서 초기 우주에 거대 블랙홀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만들어졌냐는 문제를 다뤘었어요. 별이 죽고 블랙홀이 되고 물질을 빨아먹으며 커지는 일반적인 과정으로는 시간이 모자란다는 거. 가스 구름이 직접 붕괴해서 큰 블랙홀로 태어났을 수 있다는 가설도 소개했고요.
LRD 관측은 그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고 있어요. 초기 우주에 거대 블랙홀이 예상보다 훨씬 많다는 거니까요. 블랙홀이 먼저 크게 태어난 뒤 그 주위에 은하가 형성됐을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는 거예요.
블랙홀 없는 은하도 있을까
거의 모든 대형 은하 중심에 초대질량 블랙홀이 있다고 했는데, 그럼 없는 은하도 있느냐. 있어요. 작은 왜소 은하 중에는 중심 블랙홀이 없는 것도 있어요. 다만 확인이 어려운 거예요. 블랙홀이 작으면 활동이 미약해서 있는데 못 찾는 건지 진짜 없는 건지 구분이 안 되거든요.
흥미로운 사례가 하나 있어요. 2016년에 은하단 에이벨 2261의 중심 은하에서 초대질량 블랙홀이 발견되지 않았어요. 이 은하는 태양의 100억 배 이상 되는 블랙홀이 있어야 할 만큼 큰 은하인데, 찬드라 X선 천문대로 봐도 블랙홀의 흔적이 안 보였대요. 블랙홀 두 개가 병합하면서 중력파 반동으로 은하 중심에서 튕겨 나갔을 가능성이 제기됐어요.
이건 좀 의외였어요. 태양 100억 배짜리 블랙홀이 통째로 은하 밖으로 차여 나갈 수도 있다는 거잖아요. 이전 충돌 글에서 블랙홀 병합 때 중력파가 한쪽으로 쏠리면 반동이 생긴다고 다뤘는데, 그 반동이 블랙홀을 은하에서 쫓아낼 만큼 셀 수 있다는 게 머리로는 알겠는데도 잘 안 믿겼어요. 물론 진짜 튕겨 나간 건지, 그냥 활동이 없어서 안 보이는 건지는 아직 확정이 아니에요.
블랙홀이 없어도 은하는 존재할 수 있어요. 다만 대형 은하 중심에 블랙홀이 없는 건 예외적인 상황이에요.
없으면 다른 은하가 됐을 것이다
블랙홀이 없으면 은하도 없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래요. 은하 자체는 블랙홀 없이도 존재할 수 있어요. 암흑물질의 중력이 가스를 모으고 별이 형성되는 건 블랙홀과 별개의 과정이니까요. 근데 블랙홀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보는 은하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을 거예요.
AGN 피드백이 없으면 은하 중심에서 별이 무제한으로 만들어졌을 거예요. 가스를 가열해서 별 형성을 멈추는 밸브가 없으니까요. 가장 큰 은하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별을 가지고 있었을 거고, 은하의 크기 분포 자체가 달라졌을 거예요. M-시그마 관계도 없었을 거고요.
그리고 JWST의 최근 관측이 맞다면, 초기 우주에서 블랙홀이 은하보다 먼저 형성되면서 은하의 성장을 이끌었을 가능성이 있어요. 블랙홀이 은하의 결과가 아니라 씨앗이었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이 시리즈에서 블랙홀을 계속 하나의 천체로 다뤘는데, 이번에 보니까 블랙홀은 은하라는 생태계의 핵심 부품이기도 해요. 없으면 돌아는 가겠지만, 지금과 같은 우주는 아니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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