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도 회전한다, 커 블랙홀 이야기
블랙홀 하면 보통 가만히 떠 있는 검은 구멍을 떠올려요. 그런데 실제 우주의 블랙홀은 거의 다 빠르게 회전하고 있어요. 회전하면 뭐가 달라지는지, 그리고 회전에서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다는 얘기가 진짜인지 따라가봤어요.
슈바르츠실트와 커, 두 가지 블랙홀
블랙홀 이론에는 크게 두 모델이 있어요. 하나는 1916년 슈바르츠실트가 푼, 회전하지 않는 블랙홀이에요. 완벽한 구형에 사건의 지평선 하나만 있는 단순한 형태예요. 교과서에 나오는 기본형이죠.
다른 하나는 1963년 로이 커가 푼, 회전하는 블랙홀이에요. 커 블랙홀이라고 불러요. 아인슈타인 방정식에서 회전까지 포함한 해를 찾는 건 훨씬 어려워서, 슈바르츠실트 이후 무려 47년이 걸렸어요. 그런데 실제 별은 다 자전하고 있고, 그 별이 무너져 블랙홀이 되면 각운동량이 보존되니까, 현실의 블랙홀은 거의 다 이 회전하는 커 블랙홀이에요.
회전이 시공간을 통째로 끌고 돌아요
회전하는 블랙홀의 가장 신기한 성질은 주변 시공간을 끌고 돈다는 거예요. 이걸 프레임 드래깅이라고 해요. 꿀 속에서 숟가락을 돌리면 주변 꿀이 같이 딸려 도는 것처럼, 회전하는 블랙홀은 근처 시공간 자체를 소용돌이처럼 끌고 돌아요.
이건 상상이 아니에요. 지구도 자전하면서 아주 미세하게 주변 시공간을 끌고 도는데, NASA의 중력 탐사선 그래비티 프로브 B가 2011년에 이 효과를 실제로 측정했어요. 지구도 이 정도인데 블랙홀 근처에서는 시공간이 통째로 휩쓸릴 만큼 강력해요.
에르고 영역, 가만히 있는 것조차 불가능한 곳
회전하는 블랙홀 바깥에는 에르고 영역이라는 특별한 구역이 있어요. 사건의 지평선보다 바깥이라 아직 빠져나올 수 있는 곳인데, 여기선 시공간이 너무 빠르게 끌려 돌아서 그 무엇도 가만히 멈춰 있을 수가 없어요.
빛조차 블랙홀의 회전 방향으로 억지로 딸려가요. 아무리 반대로 힘을 줘도 제자리에 서 있는 게 불가능한, 강물 한가운데 같은 영역이에요. 회전하지 않는 슈바르츠실트 블랙홀에는 없고, 오직 회전하는 블랙홀에만 생기는 구역이에요.
여기서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어요
놀라운 건 이 에르고 영역에서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다는 거예요. 1969년 로저 펜로즈가 제안한 방법이라 펜로즈 과정이라고 불러요. 에르고 영역 안으로 물체 하나를 던진 뒤 그 안에서 둘로 쪼개요. 한 조각은 블랙홀로 떨어뜨리고 다른 조각은 바깥으로 내보내는 거예요.
이때 잘 설계하면 밖으로 나온 조각이 처음 던진 물체보다 더 큰 에너지를 갖고 나올 수 있어요. 그 여분의 에너지는 블랙홀의 회전에서 빌려온 거예요. 대신 블랙홀은 그만큼 조금씩 느리게 돌게 돼요. 즉 회전하는 블랙홀은 거대한 회전 에너지 저장고인 셈이에요.
회전에는 넘지 못하는 한계 속도가 있다
그렇다고 블랙홀이 무한정 빠르게 돌 수 있는 건 아니에요. 회전 속도에는 최대 한계가 있어요. 이 한계를 넘으면 사건의 지평선이 사라지고 특이점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이런 벌거벗은 특이점은 자연이 허용하지 않는다고 여겨져요. 그래서 블랙홀은 아무리 빨라도 이 한계 바로 아래까지만 돌아요.
또 하나 재밌는 건, 회전 블랙홀의 중심 특이점은 점이 아니라 아주 작은 고리 모양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링 특이점이라고 불러요. 이론상 이 고리를 통과하면 다른 시공간으로 나갈 수 있다는 계산도 있는데, 현실에서 확인할 방법은 아직 없어요.
실제 블랙홀은 회전을 어떻게 재나
보이지도 않는 블랙홀의 회전 속도를 어떻게 알까요. 과학자들은 블랙홀 주변 강착원반에서 나오는 X선을 분석해요. 특히 철 원자가 내는 특정 빛이 블랙홀의 강한 중력과 회전 때문에 특유의 모양으로 일그러지는데, 그 일그러짐을 읽으면 회전 속도를 역산할 수 있어요.
이렇게 측정해보니 GRS 1915라는 블랙홀은 광속의 98% 이상으로 회전하는 것으로 나왔어요. 한계 속도에 거의 육박하는 셈이에요. 많은 블랙홀이 이렇게 맹렬히 돌고 있다는 게 관측으로 확인된 거예요.
지평선이 두 개예요
회전하는 커 블랙홀은 구조도 더 복잡해요. 회전하지 않는 블랙홀은 사건의 지평선이 하나뿐인데, 커 블랙홀은 바깥 지평선과 안쪽 지평선, 이렇게 두 겹의 지평선을 가져요. 회전이 시공간을 비틀면서 구조가 이중으로 갈라지는 거예요.
이 안쪽 지평선 안의 세계는 이론적으로 아주 기묘해요. 일부 계산에서는 여기서 중력이 무한대로 커지지 않고, 앞서 말한 링 특이점을 지나 다른 시공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나와요. 물론 현실에서 확인할 방법은 없는 순수 이론의 영역이에요.
블랙홀은 대머리다, 무모 정리
블랙홀에 관한 유명한 말이 있어요. 블랙홀은 대머리다, 라는 표현이에요. 블랙홀을 설명하는 데 필요한 정보가 딱 세 가지뿐이라는 뜻이에요. 질량, 회전, 그리고 전하. 이 셋만 알면 블랙홀 하나가 완전히 결정돼요.
별이 무너져 블랙홀이 될 때 그 별이 어떤 원소로 이뤄졌는지, 모양이 어땠는지 같은 정보는 다 사라지고 저 세 가지만 남아요. 이걸 무모 정리라고 해요. 그래서 회전은 블랙홀을 규정하는 단 세 가지 중 하나일 만큼 근본적인 성질이에요.
이 회전은 어디서 왔을까
블랙홀의 회전은 원래 별의 자전에서 물려받은 거예요. 우주의 거의 모든 별이 자전을 하는데, 그 별이 무너져 블랙홀이 될 때 회전이 사라지지 않고 보존되거든요. 오히려 크기가 확 줄면서 회전이 더 빨라져요.
피겨 선수가 팔을 오므리면 회전이 빨라지는 것과 같은 원리예요. 거대한 별이 작은 블랙홀로 압축되면 회전 속도가 극단적으로 치솟아요. 실제 블랙홀 대부분이 맹렬히 도는 건 바로 이 때문이에요.
회전은 블랙홀 발전소의 핵심이에요
이 회전 에너지는 이론에만 그치지 않아요. 퀘이사나 활동은하 중심에서 광속에 가깝게 뻗어나가는 거대한 제트가 관측되는데, 많은 과학자들이 이 제트의 에너지원을 블랙홀의 회전으로 봐요. 회전하는 블랙홀의 자기장이 회전 에너지를 뽑아내 물질을 우주 저편까지 쏘아 보낸다는 거예요. 이걸 블랜포드-즈나젝 과정이라고 해요.
결국 블랙홀은 그냥 빨아들이기만 하는 구멍이 아니라, 맹렬히 회전하며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엔진에 가까워요. 회전이라는 열쇠 하나로 블랙홀의 완전히 다른 얼굴이 보이는 거예요.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