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증발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좀 놀랐다. 블랙홀은 뭐든 삼키기만 하니 영원할 줄 알았다.
파보니 아니었다. 블랙홀도 아주 조금씩 김이 새듯 줄어들다가 언젠가 사라진다고 한다.
그런데 이 증발 이야기에는 반전이 세 겹으로 숨어 있었다. 하나씩 쉽게 풀어봤다.
블랙홀도 아주 조금씩 줄어든다
블랙홀은 빛도 못 빠져나오는 어둠인데, 사실 가장자리에서 아주 약한 빛이 새어 나온다. 이걸 호킹 복사라고 부른다.
영국 과학자 스티븐 호킹이 1974년에 내놓은 생각이다. 텅 빈 공간도 사실 완전히 비어 있지 않다.
아주 가까이 들여다보면 작은 알갱이 둘이 짝지어 잠깐 나타났다 곧 사라지길 반복한다.
그런데 블랙홀 가장자리에선 그 둘 중 하나가 안으로 빨려든다. 남은 하나만 밖으로 달아나며 블랙홀 몸을 조금 떼어 간다.
주전자에서 김이 모락모락 빠져나가듯, 블랙홀도 그렇게 조금씩 줄어든다.
그러니까 블랙홀은 삼키기만 하는 게 아니라, 아주 천천히 자기 몸을 잃고 있는 셈이다.
이게 놀라운 건 블랙홀에도 온도가 있다는 뜻이어서다. 온도가 있으면 아주 약하게라도 빛과 열을 내는 평범한 물건과 다를 게 없다.
나는 새까만 블랙홀에 온도가 있다는 말이 제일 신기했다.
블랙홀 증발의 반전, 클수록 더 천천히 사라진다
태양만 한 블랙홀은 영하 273도 바로 위까지 차갑다. 블랙홀은 덩치가 클수록 이렇게 더 차갑고 더 천천히 증발한다.
나는 여기서 좀 헷갈렸다. 클수록 더 뜨겁고 빨리 사라질 것 같은데 정반대였다.
큰 얼음이 작은 얼음보다 늦게 녹는 것과 비슷하다. 덩치가 크면 그만큼 천천히 사라진다.
작은 블랙홀은 뜨겁게 빨리 증발한다. 큰 블랙홀은 차갑게 아주 느리게 증발한다.
그래서 작은 블랙홀일수록 삶이 짧고 뜨겁다. 이 차이가 큰 블랙홀과 작은 블랙홀의 운명을 완전히 갈라놓는다.
태양만 한 블랙홀의 증발 시간
태양만 한 블랙홀이 다 증발하는 데는 약 10의 67제곱 년이 걸린다. 숫자가 너무 커서 감이 안 온다.
10의 67제곱은 1 뒤에 0이 67개 붙는 수다. 우리가 쓰는 어떤 말로도 부르기 힘든 시간이다.
우주가 생긴 지는 약 138억 년이다. 그 긴 세월조차 이 앞에서는 눈 깜짝할 새로 보인다.
지구가 생긴 지도 약 46억 년인데, 그마저 이 시간 앞에서는 티끌 같다.
우주가 지금까지 산 시간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도 태양만 한 블랙홀은 아직 멀쩡히 남아 있다.
쉽게 말해 블랙홀은 우주에서 가장 오래 버티는 존재인 셈이다.
그러니 블랙홀이 사라진다는 말은 지금 우리 걱정거리가 전혀 아니다. 우주가 늙고 또 늙어야 겨우 시작될 일이다.
지금은 큰 블랙홀이 오히려 자란다
우주 전체는 약 영하 270도의 은은한 열로 채워져 있다. 여기서 두 번째 반전이 온다.
지금 우주에서 큰 블랙홀은 사라지기는커녕 아주 조금씩 자란다. 빅뱅이 남긴 이 온기 때문이다.
큰 블랙홀은 이 우주보다 더 차갑다. 그래서 김을 내뿜기보다 우주의 열을 오히려 빨아들인다.
뜨거운 방에 차가운 물병을 두면 겉에 물방울이 맺힌다. 큰 블랙홀도 그렇게 주변 열을 받아 조금씩 자란다.
그러니 지금 우주의 큰 블랙홀들은 줄기는커녕 아주 천천히 몸집을 불리는 중이다.
블랙홀이 정말 증발하려면 우주가 지금보다 훨씬 더 식어야 한다. 그건 아득히 먼 미래의 일이다.
블랙홀 증발의 마지막 순간
블랙홀은 작아질수록 더 뜨거워지고 더 빨리 증발한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엔 펑 터지듯 사라진다.
이때 아주 센 빛이 확 쏟아진다고 본다. 만약 이런 마지막 섬광을 잡으면 호킹 복사의 첫 증거가 된다.
블랙홀의 일생을 사람으로 치면 지금은 아직 한창때다. 늙어 사라지는 건 상상도 못 할 만큼 뒤의 일이다.
우주가 막 태어날 때 생긴 아주 작은 블랙홀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처음부터 뜨거워서 지금쯤 증발이 끝나고 있을 수도 있다.
언제 어디서 이런 섬광이 터질지 몰라서 하늘을 넓게 훑는 관측이 필요하다.
그래서 블랙홀의 죽음은 아직 누구도 실제로 본 적이 없다.
그 마지막 신호를 잡으려는 관측이 이어진다. 원시 블랙홀이 암흑물질일까에서 그 이야기를 더 풀어놨다.
블랙홀이 언젠가 사라진다는 말은 맞지만, 그 언젠가가 상상 밖으로 멀다는 게 제일 남는다.
나는 이 아득한 시간 이야기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당장 하늘의 블랙홀이 꺼질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자주 묻는 질문
Q1. 블랙홀 증발이 뭔가
A. 블랙홀 가장자리에서 아주 약한 빛(호킹 복사)이 새어 나가며 몸이 조금씩 줄어드는 현상이다. 주전자 김이 빠지듯 천천히 사라진다.
Q2. 블랙홀은 클수록 빨리 사라지나
A. 반대다. 클수록 더 차갑고 더 천천히 증발한다. 큰 얼음이 작은 얼음보다 늦게 녹는 것과 비슷하다.
Q3. 태양만 한 블랙홀은 언제 사라지나
A. 약 10의 67제곱 년 뒤다. 우주 나이 138억 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먼 미래다.
Q4. 지금 블랙홀도 증발하고 있나
A. 큰 블랙홀은 아직 아니다. 우주(약 영하 270도)보다 차가워서, 김을 내기보다 우주의 열을 빨아들여 오히려 자란다.
Q5. 블랙홀 증발이 관측된 적 있나
A. 아직 없다. 신호가 너무 약해서, 아주 작은 블랙홀의 마지막 섬광 같은 간접 신호를 노리는 관측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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