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옆 파도행성, 우주선은 왜 으스러지지 않았을까

블랙홀 바로 옆인데 왜 안 부서졌을까

지난번에 인터스텔라 밀러 행성의 시간지연 얘기를 했었어요. 1시간이 7년이 되는 게 과학적으로 가능하다는 거. 그 글을 쓰고 나서 한 가지가 더 걸리더라고요. 밀러 행성은 블랙홀 바로 옆에 있잖아요. 이전에 블랙홀 스파게티화 글에서 블랙홀 근처에 가면 조석력으로 몸이 찢긴다고 썼거든요. 근데 밀러 행성에서는 우주선도 멀쩡하고 사람도 걸어다녀요. 행성 자체도 부서지지 않았고요. 이게 모순인가 싶었어요.


블랙홀이 크면 조석력이 약해진다

결론부터 말하면 모순이 아니에요. 핵심은 블랙홀의 크기예요. 이건 스파게티화 글에서도 잠깐 다뤘는데, 이번에 좀 더 구체적으로 파봤어요.

조석력은 가까운 쪽과 먼 쪽의 중력 차이로 생기는 힘이에요. 블랙홀이 작으면 사건의 지평선이 작고, 그만큼 좁은 범위에서 중력이 급격하게 바뀌거든요. 그래서 조석력이 세요. 근데 블랙홀이 크면 사건의 지평선도 커져요. 중력이 바뀌는 구간이 넓어지니까 같은 거리를 사이에 둔 두 지점의 중력 차이가 상대적으로 작아요.

쉽게 비유하면 이래요. 가파른 절벽에 서면 발밑과 머리 높이의 고도 차이가 크잖아요. 근데 완만한 언덕에 서면 같은 키 차이라도 고도 변화가 별로 없어요. 블랙홀이 크면 중력의 기울기가 완만해지는 거예요.

숫자로 보면 확실해진다

NASA 우주수학 프로그램에서 나온 계산을 보니까 차이가 확 와닿더라고요. 키 1.8m인 사람이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에 있다고 가정할 때, 머리와 발 사이에 걸리는 조석력이 블랙홀 크기에 따라 이렇게 달라져요.

블랙홀 유형 질량 사건의 지평선에서 조석력
항성질량 블랙홀 태양의 1배 약 196억 m/s² (즉사)
초대질량 블랙홀 태양의 1억 배 약 0.0000019 m/s² (지구 표면보다 약함)

지구 표면에서 사람이 머리와 발 사이에 느끼는 조석력이 약 0.0000055 m/s²이에요. 태양의 1억 배짜리 초대질량 블랙홀 사건의 지평선에서의 조석력은 그보다 작아요. 사람이 지구에서 서 있을 때보다 편한 거예요. 느끼지도 못해요.

반면 태양 질량 정도의 작은 블랙홀은 사건의 지평선에 닿기도 전에 196억 m/s²이에요. 사람은 물론이고 우주선이든 행성이든 산산조각 나는 수준이에요. 같은 블랙홀인데 크기에 따라 이렇게 차이가 나요.

가르강튀아는 태양의 1억 배짜리다

인터스텔라의 가르강튀아는 태양 질량의 1억 배예요. 사건의 지평선 반지름이 약 1억 5천만 km. 태양에서 지구까지의 거리와 비슷한 수준이에요. 이 정도 크기면 사건의 지평선 근처에서의 조석력이 지구 표면에서 느끼는 것보다 약해요.

그러니까 밀러 행성이 가르강튀아 바로 옆에 있어도 조석력으로 행성이 부서지거나 우주선이 으스러지지 않는 거예요. 블랙홀이 충분히 크니까. 사람이 걸어다닐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예요. 쿠퍼가 나중에 가르강튀아 안으로 직접 떨어졌을 때도 바로 찢기지 않는 건 이 원리 때문이에요.

저는 이 부분이 좀 의외였어요. 블랙홀이면 무조건 위험할 것 같은데, 오히려 큰 블랙홀이 작은 블랙홀보다 안전하다는 게요. 하버드 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센터의 루투파르나 다스라는 연구자도 초대질량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을 넘을 때 스파게티화를 느끼지 못할 거라고 얘기했어요.

그래도 빠져나올 수는 없다

한 가지 주의할 게 있어요. 조석력이 약하다고 해서 안전한 건 아니에요. 초대질량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을 넘으면 조석력을 못 느끼면서 편안하게 들어갈 수 있지만, 한번 넘으면 빠져나올 방법이 없어요.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게 그런 의미거든요. 빛조차 못 빠져나오는 경계예요.

NASA 우주수학 자료에서 이런 표현이 있더라고요. 우주 여행자가 초대질량 블랙홀에 빠져도 사건의 지평선을 넘었다는 걸 물리적으로 느끼지 못할 수 있다는 거예요. 아무런 감각 없이 들어갔는데 이미 돌아올 수 없는 상태. 크기를 미리 모르면 빠진 줄도 모른다는 거예요.

인터스텔라에서 쿠퍼가 가르강튀아에 들어간 뒤 5차원 공간이 펼쳐지는 건 현재 물리학으로 검증 안 되는 영역이에요. 근데 들어가는 과정에서 안 찢긴다는 건 과학적으로 맞아요.

파도는 가능한데 행성 파괴는 안 되나

여기서 한 가지 좀 걸리는 게 있었어요. 조석력이 약해서 행성이 안 부서진다면, 밀러 행성의 1.2km 파도는 어떻게 설명하느냐는 거예요. 파도가 조석력 때문에 생긴 거잖아요.

이건 규모의 문제예요. 사람 몸 크기인 1.8m 사이의 조석력은 무시할 수준이에요. 근데 행성 크기, 그러니까 수천 km 단위로 보면 얘기가 달라져요. 행성의 블랙홀 쪽 면과 반대쪽 면 사이의 중력 차이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거든요. 이 차이가 바닷물을 잡아당겨서 거대한 파도를 만드는 거예요. 지구에서 달의 중력으로 밀물 썰물이 생기는 것과 같은 원리인데, 블랙홀이니까 규모가 극단적인 거죠.

다만 이 부분은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려요. 행성 규모에서 조석력이 파도를 만들 만큼은 되지만 행성을 파괴할 만큼은 안 된다는 설정이 현실적이냐는 건데, 킵 손은 가르강튀아의 자전 효과와 행성의 흔들림을 조합해서 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있어요. 완전히 설득력이 있다고 보기는 좀 그렇지만, 물리 법칙을 노골적으로 위반한 건 아닌 거예요.

결국 크기가 답이었다

블랙홀 옆에 있는데 왜 안 으스러졌냐는 질문의 답은 간단해요. 블랙홀이 충분히 크니까. 태양 질량의 1억 배짜리 초대질량 블랙홀 근처에서의 조석력은 사람이나 우주선을 파괴할 수준이 아니에요. 오히려 지구 표면에서 느끼는 것보다 약해요.

블랙홀 관련 글을 여러 편 쓰면서 계속 나오는 결론이 하나 있어요. 블랙홀은 크기에 따라 전혀 다른 존재라는 거예요. 작은 블랙홀은 접근만으로 모든 걸 찢어놓고, 큰 블랙홀은 들어가는 줄도 모를 만큼 조용해요. 같은 이름이 붙어 있지만 성격이 완전히 다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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