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포톤 스피어와 포톤 링 차이, 장소와 사진은 다르다

이름이 비슷한데 다른 것

지난 글에서 블랙홀 그림자가 생기는 원리를 다루면서 광자구와 광자 고리라는 말을 둘 다 썼어요. 글을 올리고 나서 보니까 이 둘이 같은 건지 다른 건지 헷갈리더라고요. 포톤 스피어, 포톤 링. 이름이 비슷하니까 같은 걸 부르는 다른 이름인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까 전혀 다른 개념이었어요.


포톤 스피어는 공간에 있는 영역이다

포톤 스피어는 블랙홀 주변의 특정 반지름에 존재하는 구형 영역이에요. 한국어로는 광자구라고 부르고요. 이 영역에서는 빛이 블랙홀 주위를 원형 궤도로 돌 수 있어요. 회전하지 않는 슈바르츠실트 블랙홀 기준으로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의 1.5배 지점에 있어요.

핵심은 이게 실제 공간에 존재하는 물리적 영역이라는 거예요. 블랙홀 주변 특정 반지름의 구면이에요. 빛이 여기 정확히 접선 방향으로 들어오면 원을 그리며 돌아요. 다만 궤도가 극도로 불안정해서 아주 작은 흔들림에도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거나 바깥으로 튕겨 나가요. 실제로 빛이 여기서 계속 머무르는 건 불가능해요.

회전하는 커 블랙홀에서는 좀 달라져요. 포톤 스피어가 하나의 구가 아니라 여러 겹으로 나뉘어요. 블랙홀과 같은 방향으로 도는 빛은 더 안쪽에서 궤도를 돌고, 반대 방향은 더 바깥에서 돌아요. 그래서 커 블랙홀에서는 포톤 셸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고 하더라고요. 얇은 구가 아니라 두께가 있는 껍질이라는 뜻이에요.

포톤 링은 관측자 눈에 보이는 이미지다

포톤 링은 포톤 스피어와 전혀 다른 거예요. 포톤 스피어가 블랙홀 주변 공간에 있는 물리적 영역이라면, 포톤 링은 멀리서 관측했을 때 보이는 이미지예요. 블랙홀 뒤쪽이나 주변에 있는 빛이 포톤 스피어 근처를 지나면서 크게 휘어져서 관측자 눈에 고리 형태로 보이는 거예요.

쉽게 말하면 포톤 스피어는 빛이 도는 장소이고, 포톤 링은 그 장소를 지나온 빛이 만드는 사진이에요. 장소와 사진의 차이예요.

저는 이 구분이 처음에 좀 안 와닿았어요. 근데 생각해보면 당연한 거예요. 포톤 스피어는 블랙홀 주변 모든 방향을 감싸는 구인데, 우리 눈에는 당연히 고리로 보이잖아요. 구를 정면에서 보면 가장자리가 고리처럼 보이는 것과 같은 원리예요.

포톤 링은 하나가 아니라 무한히 겹쳐 있다

이 부분이 제일 흥미로웠어요. 포톤 링은 단일한 고리가 아니에요. 무한히 많은 서브링이 겹쳐져 있어요.

2020년에 하버드 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센터의 마이클 존슨 연구팀이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한 논문이 이걸 정리했어요. 블랙홀 주변의 빛은 몇 바퀴를 돌았느냐에 따라 분류할 수 있거든요. 반 바퀴 돈 빛이 만드는 이미지를 n=1 서브링, 한 바퀴 돈 빛을 n=2 서브링, 이런 식으로요. n이 커질수록 서브링은 점점 가늘어지고 어두워지면서 블랙홀 그림자 경계에 가까워져요.

이론적으로는 이 서브링이 무한히 많아요. n=1, n=2, n=3... 끝없이 겹쳐져 있는 거예요. 다만 n이 커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어두워지고 가늘어지니까 실제로 관측 가능한 건 처음 몇 개뿐이에요.

EHT가 본 건 아직 뭉뚱그려진 것

2019년에 EHT가 공개한 M87 블랙홀 이미지에서 보이는 밝은 고리가 포톤 링이냐. 정확히는 아니에요. EHT 이미지의 밝은 고리는 강착 원반에서 직접 나오는 빛과 포톤 링이 뒤섞인 거예요. 현재 EHT의 해상도로는 이 둘을 분리하기 어렵고, 서브링 구조는 아예 구분이 안 돼요.

EHT 이미지에서 보이는 빛을 세 가지로 분류하면 이래요. 첫째, 강착 원반에서 직접 나와서 약간만 휘어진 빛. 이게 전체 밝기의 대부분을 차지해요. 둘째, 블랙홀 뒤쪽을 지나면서 크게 휘어진 빛. 렌즈 링이라고 불러요. 셋째, 포톤 스피어 근처를 한 바퀴 이상 돌고 나온 빛. 이게 진짜 포톤 링이에요. 전체 밝기에서 포톤 링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0%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해요.

10%면 어두운 거 아니냐 싶은데, 포톤 링의 가치는 밝기가 아니에요. 포톤 링의 크기와 모양은 블랙홀의 시공간 구조에 의해서만 결정돼요. 강착 원반의 빛은 가스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지만, 포톤 링은 블랙홀 자체의 성질만 반영하거든요. 그래서 포톤 링을 정밀하게 관측하면 일반 상대성 이론을 더 엄밀하게 검증할 수 있는 거예요.

서브링을 보려면 우주에 망원경이 필요하다

마이클 존슨 연구팀의 논문에 따르면 서브링을 관측하려면 EHT를 우주로 확장해야 해요. 지상 망원경만으로는 해상도가 부족하거든요. n=1 서브링을 보려면 저궤도 위성에 전파 망원경을 올려야 하고, n=2를 보려면 달에 기지가 필요하고, n=3까지 보려면 태양-지구 L2 지점에 관측소가 있어야 한대요.

n=2 서브링이 제일 중요하다고 해요. n=1까지는 아직 강착 원반의 영향을 받는데, n=2부터는 거의 순수하게 블랙홀 시공간의 구조만 반영하거든요. 그러니까 n=2를 관측하면 블랙홀 주변의 시공간이 일반 상대성 이론의 예측과 맞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거예요.

포톤 링이 완전한 원이 아니라 찌그러져 있으면 블랙홀의 자전 속도를 알 수 있고, 크기가 이론과 다르면 일반 상대성 이론에 수정이 필요하다는 뜻이 돼요.

정리하면 장소와 사진의 차이다

포톤 스피어는 블랙홀 주변 공간에 존재하는 물리적 영역이에요. 빛이 원형 궤도를 도는 불안정한 구면이에요. 포톤 링은 그 영역을 지나온 빛이 멀리서 관측자에게 보이는 이미지예요. 무한히 많은 서브링이 겹쳐져 있고, 각각은 빛이 블랙홀을 몇 바퀴 돌았느냐에 따라 나뉘어요.

구분 포톤 스피어 포톤 링
성격 공간상의 물리적 영역 관측되는 이미지
모양 구면 (커 블랙홀은 껍질) 고리 (서브링 무한 중첩)
위치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의 1.5배 블랙홀 그림자 경계 부근
관측 여부 직접 관측 불가 원리상 관측 가능 (현재 해상도 부족)

저는 둘을 같은 것으로 혼동하고 있었어요. 이번에 정리하면서 확실해진 건, 포톤 스피어는 블랙홀이 만든 빛의 함정이고 포톤 링은 그 함정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빛이 우리한테 보여주는 흔적이라는 거예요. 둘 사이에 인과관계는 있지만 같은 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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