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근처에서 시간은 정말 느리게 흐를까

1mm 차이로 시간이 다르게 간다

예전에 인터스텔라 밀러 행성의 시간지연 글을 쓰면서 GPS 위성 보정 얘기를 했었어요. 중력이 강한 곳에서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거. 그때는 블랙홀과 GPS 위성이라는 양 극단으로 다뤘는데, 최근에 좀 더 찾아보니까 이게 우리 일상 스케일에서도 실제로 측정된다는 자료가 나오더라고요. 1mm 높이 차이에서도 시간이 다르게 흘러요. 이건 예상보다 좀 더 구체적인 얘기였어요.


33cm 차이부터 시작됐다

2010년에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 그러니까 NIST에서 알루미늄 이온 원자시계 두 대를 이용한 실험을 했어요. 두 시계를 33cm 높이 차이로 배치하고 비교했더니, 높은 쪽 시계가 낮은 쪽보다 빨리 간다는 걸 실제로 측정한 거예요. 33cm. 책 한 권 세워놓은 높이도 안 돼요.

이 시계가 37억 년에 1초 오차가 나는 수준이래요. 그 정도 정밀도가 있으니까 33cm 차이에서 생기는 아주 미세한 시간 차이를 잡아낼 수 있었던 거예요. NIST는 이 실험 결과를 발표하면서 머리가 발보다 늙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표현을 썼어요.

저는 이게 좀 와닿았어요. 블랙홀이나 GPS 위성은 먼 얘기인데, 33cm는 제 책상 높이거든요. 그 높이에서 이미 시간이 다르게 흘러요.

2022년에 1mm까지 줄였다

2022년에는 같은 NIST 산하 JILA 연구소의 준 예 교수 팀이 더 극단적인 실험을 했어요. 하나의 원자시계 안에서 스트론튬 원자 약 10만 개를 광격자라는 구조에 가둬놓고, 윗부분과 아랫부분의 시간 흐름을 비교한 거예요. 높이 차이가 1mm. 연필 심 굵기예요.

이 실험에서도 아래쪽 원자가 위쪽보다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게 측정됐어요. 일반 상대성 이론의 예측과 일치했어요. 기존에는 두 대의 시계를 놓고 비교했는데, 이번에는 하나의 시계 안에서 측정한 거라 높이 차이를 훨씬 정확하게 알 수 있었대요. 두 시계의 높이 차이를 1mm 이하로 정확히 맞추는 건 물리적으로 어렵거든요. 하나의 시계 안에서는 원자 위치를 이미지로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2023년에는 JILA 팀이 한 발 더 나갔어요. 5개의 원자 앙상블을 1cm 높이에 균일하게 배치해서 블라인드 테스트로 중력 적색편이를 측정했어요. 블라인드 테스트라는 건 연구자가 결과를 미리 모르게 설계한 실험인데, 측정된 값이 아인슈타인의 예측과 일치했어요.

지구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다

정리하면 이래요. 중력에 의한 시간지연은 블랙홀 같은 극한 환경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에요. 지구 표면에서도 일어나고 있어요. 다만 차이가 너무 작아서 일상에서 느끼지 못할 뿐이에요.

구체적으로 보면 지구 표면에서 1m 높이 차이당 시간 차이가 약 10의 -16승이에요. 1경분의 1. 지구 나이인 45억 년 동안 쌓여도 수십 마이크로초밖에 안 돼요. 느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에요. 근데 존재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에서는 확실히 존재해요.

GPS 위성은 이 차이가 하루에 38마이크로초까지 쌓이니까 보정해야 하고, 블랙홀 옆에서는 1시간이 7년이 될 만큼 극단적이 돼요. 같은 원리가 규모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거예요.

블랙홀 근처에서는 어느 정도인가

지구에서 1mm 차이도 측정이 되는데, 블랙홀 근처에서는 당연히 훨씬 극적이에요. 이전 글에서 다뤘던 내용인데 다시 정리하면 이래요.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에 가까워질수록 시간지연은 극단적으로 커져요. 사건의 지평선 바로 바깥에서는 시간이 거의 멈추는 것처럼 보여요. 바깥에서 지켜보는 사람 기준으로요. 인터스텔라의 밀러 행성은 태양 질량 1억 배짜리 블랙홀 바로 옆에 있어서 1시간이 지구의 7년이었어요. 시간이 약 6만 1천 배 느리게 흐르는 거예요.

사건의 지평선 자체에서는 시간지연이 무한대가 돼요. 바깥 관측자가 보기에 물체가 사건의 지평선에 영원히 도달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여요. 물체 표면에서 나오는 빛이 점점 붉어지면서 어두워지다가 결국 안 보이게 돼요. 반면 떨어지는 사람 자신은 유한한 시간 안에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요. 관점에 따라 경험이 완전히 다른 거예요.

느끼지 못할 뿐 여기서도 일어나고 있다

블랙홀 근처에서 시간이 느리게 흐르느냐는 질문의 답은 간단해요. 맞아요. 그리고 블랙홀 근처뿐 아니라 지금 여기서도 일어나고 있어요. 머리와 발 사이에서도요. 차이가 너무 작아서 원자시계 없이는 잡을 수 없을 뿐이에요.

블랙홀 시리즈를 쓰면서 블랙홀은 먼 곳의 극단적인 천체라고 생각했는데, 중력 시간지연은 블랙홀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었어요. 지구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고, 블랙홀은 그 규모가 극단적일 뿐이에요. 같은 물리 법칙이 규모만 다른 거예요. 그게 이번에 제일 남는 얘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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