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이사는 왜 우주에서 가장 밝은 천체인가

블랙홀이 어떻게 가장 밝은 빛을 만드나

지난번에 은하 중심 블랙홀이 물질을 빨아들일 때 강착 원반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나온다는 얘기를 했어요. AGN 피드백 얘기였죠. 그 극단적인 형태가 퀘이사예요. 블랙홀은 빛도 못 빠져나오는 천체라고 시리즈 내내 썼는데, 그 블랙홀이 우주에서 가장 밝은 천체의 정체라는 게 좀 모순처럼 들리잖아요. 빨아들이는 게 어떻게 빛나느냐. 이번에 이걸 파봤어요.


블랙홀이 아니라 그 주변이 빛난다

핵심부터 짚으면, 빛나는 건 블랙홀이 아니에요. 블랙홀 자체는 여전히 빛을 안 내요. 빛나는 건 블랙홀 주변을 도는 강착 원반이에요. 이전 그림자 글에서 다뤘던 그 원반이에요.

초대질량 블랙홀이 주변 가스와 먼지를 빨아들이면 그 물질이 곧장 블랙홀로 떨어지는 게 아니에요. 각운동량 때문에 블랙홀 주위를 빠르게 돌면서 원반을 만들어요. 이 원반 안에서 물질끼리 어마어마한 속도로 마찰하면서 온도가 섭씨 수십만 도 이상으로 올라가요. 물질이 플라즈마 상태가 되면서 X선, 자외선, 가시광선, 전파까지 전 파장대에서 강력한 빛을 뿜어내요.

그러니까 퀘이사는 블랙홀이 물질을 먹는 과정에서 흘리는 빛인 셈이에요. 블랙홀이 격렬하게 먹을수록 더 밝아져요.

중력 에너지가 빛으로 바뀐다

왜 그렇게 밝은지 원리를 좀 더 들여다봤어요. 물질이 블랙홀로 떨어지면 중력 위치 에너지가 운동 에너지로 바뀌고, 그게 마찰을 통해 열과 빛으로 전환돼요. 여기서 중요한 건 이 변환 효율이 핵융합보다 훨씬 높다는 거예요.

태양 같은 별은 핵융합으로 빛을 내는데, 물질의 질량 중 약 0.7%만 에너지로 바뀌어요. 근데 강착 원반은 떨어지는 물질 질량의 약 6~40%까지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어요. 회전하지 않는 블랙홀이면 약 6%, 빠르게 회전하는 블랙홀이면 40%가 넘어가요. 핵융합의 수십 배 효율이에요. 같은 양의 물질로 훨씬 많은 빛을 만드는 거예요.

저는 이 효율 숫자가 좀 의외였어요. 핵융합이라고 하면 수소폭탄 떠올리면서 우주에서 제일 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별이 핵융합으로 짜내는 게 0.7%인데 블랙홀 강착은 잘하면 40%라니까, 차원이 다른 거예요. 우주에서 에너지를 가장 알뜰하게 뽑아내는 방식이 핵융합이 아니라 블랙홀에 떨어뜨리는 거라는 게, 시리즈 내내 블랙홀을 그냥 삼키는 구멍으로만 봐온 입장에서는 새삼스러웠어요.

이게 퀘이사가 밝은 근본적인 이유예요. 우주에서 물질을 에너지로 바꾸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블랙홀 강착이거든요.

은하 전체보다 밝다

퀘이사가 얼마나 밝은지 숫자로 보면 좀 비현실적이에요. 가장 유명한 퀘이사인 3C 273은 처녀자리에 있는데, 24억 4천만 광년이나 떨어져 있어요. 그런데도 절대등급이 -26.7이에요. 밝기로 환산하면 태양의 약 2조 배예요. 우리 은하 같은 대형 은하 전체가 내는 빛의 약 100배에 달해요.

은하에는 수천억 개의 별이 있잖아요. 그 별 전체가 내는 빛보다 은하 중심의 퀘이사 하나가 훨씬 밝은 거예요. 그래서 멀리 있는 퀘이사를 보면 모은하는 그 빛에 가려서 잘 안 보여요. 점처럼 밝게 빛나니까 처음 발견됐을 때 별인 줄 알았어요. 준항성체, 영어로 quasi-stellar object라고 불렀고, 여기서 퀘이사라는 이름이 나왔어요.

3C 273은 겉보기 등급이 12.8이라 아마추어 망원경으로도 볼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24억 광년 떨어진 천체를 동네에서 망원경으로 잡을 수 있다는 게 좀 의외였어요. 수천억 개 별로 이뤄진 은하는 안 보이는데, 그 은하 중심의 점 하나는 보인다는 거잖아요. 밝기 차이가 그 정도라는 게 숫자보다 이 사실에서 더 와닿았어요.

하루에 태양 하나를 먹는 괴물

2024년에 발견된 퀘이사가 기록을 갈아치웠어요. J0529-4351이라는 퀘이사인데, 호주국립대 연구팀이 유럽남방천문대 VLT로 관측한 결과를 네이처 천문학에 발표했어요. 지구에서 약 120억 광년 떨어져 있고, 밝기가 태양의 약 500조 배예요. 우리 은하 빛의 2만 배가 넘어요.

중심 블랙홀의 질량은 태양의 약 170억~190억 배로 추정돼요. 더 놀라운 건 먹는 속도예요. 이 블랙홀은 1년에 태양 370개에 해당하는 가스와 먼지를 빨아들이고 있어요. 하루에 태양 하나꼴이에요. 강착 원반의 폭이 약 7광년인데,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별인 센타우리자리 알파까지 거리의 1.5배예요.

이 퀘이사가 좀 어이없는 게, 1980년 관측 데이터에 이미 찍혀 있었대요. 근데 너무 밝아서 오히려 가까운 별로 잘못 분류됐어요. 천체를 분류하는 머신러닝 모델이 이렇게 밝은 건 별일 거라고 판단한 거예요. 2023년에야 사람이 직접 관측해서 퀘이사라는 게 확인됐어요. 우주에서 가장 밝은 천체가 40년 넘게 등잔 밑에 숨어 있었던 셈이에요.

저는 이 대목이 이 글에서 제일 재밌었어요. 너무 밝아서 못 알아봤다는 거잖아요. 보통은 어두워서 놓치는데, 이건 반대로 기준을 벗어날 만큼 밝으니까 기계가 평범한 별로 처리해버린 거예요. 가장 극단적인 천체가 가장 평범한 걸로 분류됐다는 게, 데이터만 믿으면 안 되는 이유를 보여주는 사례다 싶었어요.

스스로 한계가 있다

블랙홀이 무한정 밝아질 수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에요. 한계가 있어요. 에딩턴 한계라고 불러요. 블랙홀이 물질을 빨아들일 때 나오는 빛이 너무 강해지면, 그 빛의 압력이 떨어지는 물질을 바깥으로 밀어내거든요. 빛 자체가 연료 공급을 방해하는 거예요.

빨아들이는 중력과 밀어내는 빛의 압력이 균형을 이루는 지점이 에딩턴 한계예요. 이론적으로 블랙홀은 이 한계 이상으로는 밝아지기 어려워요. 이전 시리즈에서 빨려 들어가는 물질 중 실제로 블랙홀이 삼키는 건 일부뿐이고 나머지는 흩어진다고 했었는데, 이것도 빛의 압력 때문이에요. 자기가 내는 빛 때문에 자기가 먹을 걸 밀어내는 거예요.

J0529-4351 같은 퀘이사는 이 한계 근처에서, 혹은 살짝 넘어선 수준에서 격렬하게 먹고 있는 상태로 추정돼요. 그래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블랙홀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대부분 먼 과거에 있다

퀘이사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어요. 대부분 아주 멀리, 즉 아주 먼 과거에 있어요. 빛이 우리한테 도달하는 데 수십억 년이 걸리니까, 먼 퀘이사를 본다는 건 우주의 어린 시절을 본다는 뜻이에요. 퀘이사는 우주 나이가 현재의 약 3분의 1이었을 때 가장 활발했고, 최근으로 올수록 발견되는 수가 줄어들어요.

이유는 연료예요. 초기 우주에는 은하에 차가운 가스가 풍부했어요. 블랙홀이 먹을 게 많았던 거예요. 그래서 격렬하게 빨아들이면서 퀘이사로 밝게 빛났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가스가 별로 소비되거나 흩어지고, 블랙홀 주변의 연료가 줄어들면서 퀘이사 활동도 잦아들었어요.

우리 은하 중심의 궁수자리 A*도 과거에는 퀘이사처럼 활동적이었을 수 있어요. 지금은 주변 연료가 부족해서 조용한 상태인 거예요. 잠자는 퀘이사인 셈이에요.

가장 어두운 게 가장 밝은 걸 만든다

퀘이사가 우주에서 가장 밝은 천체인 이유는 블랙홀 강착이 물질을 에너지로 바꾸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이에요. 빛나는 건 블랙홀이 아니라 그 주변 강착 원반이고, 격렬하게 먹을수록 밝아지되 에딩턴 한계 때문에 무한정 밝아지지는 못해요. 대부분 초기 우주에 몰려 있는 건 그때 연료가 풍부했기 때문이고요.

이 시리즈에서 블랙홀을 빛도 못 빠져나오는 가장 어두운 천체로 다뤄왔는데, 그 블랙홀이 우주에서 가장 밝은 빛의 원천이라는 게 결국 모순이 아니었어요. 빛을 내는 게 아니라 빛을 만드는 거니까요. 가장 어두운 천체가 가장 밝은 빛을 만든다는 게, 이번 글에서 제일 남는 얘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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