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그림자는 왜 생길까, 사건의 지평선과 다른 이유

블랙홀 사진에서 가운데 검은 부분의 정체

블랙홀 시리즈를 쓰면서 EHT가 찍은 블랙홀 사진 얘기를 몇 번 했어요. 가운데 검은 부분과 주변의 밝은 고리. 그때마다 가운데 검은 부분을 블랙홀 그림자라고 썼는데, 정작 이 그림자가 왜 생기는지는 제대로 안 다뤘더라고요. 사건의 지평선 안이니까 당연히 검다고 넘어갔는데, 찾아보니까 그게 아니었어요. 그림자의 크기는 사건의 지평선보다 크고, 생기는 원리도 좀 달라요.


빛이 블랙홀 주위를 도는 영역이 있다

블랙홀 그림자를 이해하려면 광자구라는 걸 먼저 알아야 해요. 광자구는 빛이 블랙홀 주위를 원형 궤도로 돌 수 있는 영역이에요. 영어로 photon sphere. 회전하지 않는 블랙홀 기준으로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의 1.5배 지점에 있어요. 사건의 지평선보다 바깥에 있는 거예요.

이 궤도가 불안정해요. 빛이 정확히 이 반지름으로 들어오면 원을 그리며 돌 수 있지만, 아주 작은 흔들림만 있어도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거나 바깥으로 튕겨 나가요. 안정적으로 계속 도는 건 불가능하고, 잠깐 머물다가 결국 한쪽으로 빠지는 거예요.

저는 광자구라는 영역이 있다는 것 자체가 좀 의외였어요. 빛이 중력에 의해 휘는 건 알고 있었는데, 원을 그리며 돈다는 건 다른 수준의 얘기거든요. 뉴턴 역학에는 없는 현상이고, 순전히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만 나오는 거래요.

그림자는 사건의 지평선이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게 나와요. 블랙홀 그림자의 크기가 사건의 지평선과 같지 않다는 거예요. 그림자는 사건의 지평선보다 커요.

원리는 이래요. 먼 곳에서 빛이 블랙홀 쪽으로 날아와요. 블랙홀에서 충분히 먼 빛은 약간 휘기만 하고 지나가요. 좀 더 가까이 지나가는 빛은 크게 휘어요. 광자구 근처까지 오는 빛은 블랙홀을 여러 바퀴 돌다가 결국 빠져나가거나 빨려 들어가요. 그리고 광자구보다 안쪽으로 들어오는 빛은 전부 블랙홀에 잡혀요.

멀리서 관측자가 보면, 빛이 잡히는 영역과 빠져나오는 영역의 경계가 보여요. 이 경계 안쪽이 검게 보이는 거예요. 그게 블랙홀 그림자예요. 이 경계를 결정하는 건 사건의 지평선이 아니라 광자구예요. 광자구가 빛의 포획 여부를 결정하는 실질적인 경계인 거예요.

슈바르츠실트 블랙홀 기준으로 그림자의 겉보기 크기는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의 약 2.6배예요. 사건의 지평선은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의 1배이고 광자구는 1.5배인데, 그림자는 2.6배. 빛이 블랙홀 근처에서 휘는 효과까지 더해지니까 실제보다 크게 보이는 거예요.

밝은 고리는 강착 원반과 광자 고리가 섞인 것

그림자 주변의 밝은 고리는 뭐냐. 두 가지가 섞여 있어요. 하나는 강착 원반에서 나오는 빛이에요. 블랙홀 주변을 도는 뜨거운 가스가 내는 빛이 중력에 의해 휘어져서 고리처럼 보이는 거예요. 다른 하나는 광자 고리예요. 광자구 근처를 한 바퀴 이상 돌다가 빠져나온 빛이 만드는 고리예요.

2019년에 EHT가 공개한 M87 블랙홀 이미지에서 보이는 밝은 고리는 이 두 가지가 뒤섞인 거예요. 현재 EHT의 해상도로는 강착 원반 빛과 광자 고리를 완전히 분리하기 어렵다고 해요. 2022년에 EHT 연구진 일부가 M87 데이터에서 광자 고리를 분리했다는 주장을 냈지만, 독립적인 검증은 아직 안 됐어요.

저는 블랙홀 사진의 밝은 고리가 전부 강착 원반인 줄 알았어요. 광자 고리라는 게 따로 있고, 그게 광자구에서 나온 빛이라는 건 이번에 알았어요.

회전하면 고리가 비대칭이 된다

회전하지 않는 블랙홀이면 그림자는 완전한 원이에요. 근데 실제 블랙홀은 대부분 회전하잖아요. 회전하는 커 블랙홀에서는 광자구가 하나의 구가 아니라 여러 겹으로 나뉘어요. 블랙홀의 회전 방향과 같은 쪽은 광자구가 더 안쪽에 형성되고, 반대쪽은 더 바깥에 형성돼요.

이 때문에 밝은 고리가 비대칭이 돼요. EHT가 찍은 M87 블랙홀 사진을 보면 고리의 아래쪽이 위쪽보다 밝잖아요. 블랙홀이 회전하면서 한쪽으로 물질이 우리 방향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반대쪽은 멀어지거든요. 다가오는 쪽은 도플러 효과로 밝게 보이고 멀어지는 쪽은 어둡게 보여요.

그림자의 모양 자체도 약간 찌그러져요. 회전 방향 쪽이 눌린 D자 형태가 된다고 하는데, 현재 EHT 해상도로는 이 찌그러짐까지 확인하기는 어렵대요.

그림자 크기로 블랙홀을 검증한다

블랙홀 그림자가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어요. 일반 상대성 이론이 예측하는 그림자 크기와 실제 관측된 그림자 크기를 비교해서 이론을 검증할 수 있거든요. 슈바르츠실트 블랙홀이면 그림자 크기가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의 약 2.6배여야 해요. 실제 관측값이 이것과 맞으면 일반 상대성 이론이 맞다는 증거가 되는 거예요.

2019년 M87 블랙홀과 2022년 궁수자리 A* 블랙홀의 그림자 크기는 일반 상대성 이론의 예측과 잘 맞았어요. 다만 수정 중력 이론을 적용하면 그림자 크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연구도 계속 나오고 있어요. 2025년 이후에도 EHT가 해상도를 높여가면서 이론 간 차이를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정밀한 측정을 목표로 하고 있대요.

이전에 특이점이 이론의 한계를 보여주는 표지판이라고 썼었는데, 블랙홀 그림자는 반대예요. 이론이 맞다는 걸 보여주는 표지판인 거예요.

검은 부분은 빈 공간이 아니다

블랙홀 그림자는 빛이 없어서 검게 보이는 영역이에요. 사건의 지평선 자체가 아니라, 광자구가 결정하는 빛의 포획 경계에 의해 만들어지고, 크기는 사건의 지평선보다 약 2.6배 커요. 밝은 고리는 강착 원반의 빛과 광자 고리가 섞인 것이고, 회전하는 블랙홀에서는 비대칭이 돼요.

저는 블랙홀 사진의 검은 부분이 사건의 지평선 그 자체인 줄 알았거든요. 아니었어요. 실제 사건의 지평선은 저 검은 부분 안에 더 작게 들어가 있어요. 블랙홀이 빛을 휘게 만들기 때문에 자기 실제 크기보다 더 크게 보이는 거예요. 블랙홀이 자기 그림자를 부풀리는 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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