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17일, 1억 3천만 광년쯤 떨어진 은하 NGC 4993에서 중성자별 두 개가 부딪혔다.
그 흔들림은 중력파가 되어 지구에 닿았고, 거의 같은 때 감마선이 도착했다. 곧이어 세계 곳곳의 망원경이 빛을 발견했다.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생긴 중력과 빛을 함께 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 관측으로 인해 엉뚱해 보이는 질문 하나가 새삼 떠올랐다. 우리가 아는 공간 말고 차원이 더 있는가.
인터스텔라의 마지막 장면, 그러니까 매튜 매커너히가 책장의 공간에 있던 장면이 바로 이 질문과 연결된다.
책장 뒤의 방
매튜 매커너히가 연기하는 쿠퍼가 가르강튀아 안으로 떨어진 뒤, 책장이 끝없이 겹쳐진 공간에 떠 있게 된다. 영화는 이곳을 테서랙트라고 부른다.
거기서 그는 과거 딸의 방을 들여다본다. 손을 뻗어 건드릴 수 있는 건 중력 뿐이다. 중력을 이용해서 책을 떨어뜨리고, 먼지로 좌표를 그리고, 시계 초침을 모스 부호로 떨게 한다.
이 장면이 성립하려면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 우리 공간 바깥에 더 큰 공간이 있어야 하고(영화 속 이름은 벌크), 누군가 거기에 방을 지어야 하고, 중력이 그 공간을 건너 과거까지 닿도록 만들어야 한다.
킵 손이 붙인 딱지
과학 자문을 맡은 킵 손은 2014년 해설서 『인터스텔라의 과학』을 냈다. 그는 영화 속 과학을 세 칸으로 나눠 표시했다. 확립된 사실, 근거 있는 추측, 그리고 그냥 추측이다.
벌크는 가운데 칸이다. 양자중력을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이 진지하게 다루는 가능성 있는 영역이다.
테서랙트는 맨 끝 칸이다. 벌크가 있다면 그 안에 이런 구조를 지을 수도 있겠다는 정도의 상상 같은 거다. 그는 지구에서 설득력 있는 중력 이상 현상이 관측된 적도 없다고 적었다.
영화를 만든 과학자가 스스로, 이 장면은 상상이라고 선을 그어놓은 것이다.
중력만 새어 나간다는 생각
그래도 벌크라는 발상은 물리학 논문이 출처다. 1999년 리사 랜들과 라만 선드럼이 내놓은 모형이 대표적이다.
당구대를 떠올리면 쉽다. 당구공은 당구대 위에서만 구른다. 그런데 공이 부딪히는 소리는 방 전체로 퍼진다.
이 모형에서 우리 우주는 당구대 같은 얇은 막이다. 물질과 빛은 막 위에 붙어 있고, 중력만 막 바깥에 닿을 수 있다. 인터스텔라가 빌려온 그림이 이러한 형태이다.
그런데 중력이 바깥으로 새면 티가 난다. 난로 앞 온기가 멀어질수록 얼마나 줄어드는지는 방의 모양이 정한다. 벽 하나가 뚫려 있으면 더 빨리 식는다.
중력도 새는 곳이 있으면 거리에 따라 약해지는 비율이 뉴턴의 법칙에서 벗어난다. 그러니 재보면 된다.
머리카락 굵기와 1억 3천만 광년
가까운 거리는 미국 워싱턴대 외트-워시 연구진이 쟀다. 가는 줄에 매단 원판이 아주 작은 힘에도 비틀리는 비틀림 저울을 쓴다.
2007년 결과로는 0.056밀리미터까지 뉴턴의 법칙이 그대로 맞았다. 여분 차원이 있더라도 크기가 0.044밀리미터보다 작아야 한다는 뜻이다.
2020년에는 0.052밀리미터까지 내려갔다. 머리카락 굵기쯤 되는 거리다.
먼 거리를 잰 것이 앞의 중성자별 충돌이다. 2018년 크리스 파르도, 마야 피시바흐, 대니얼 홀츠, 데이비드 스퍼겔이 이 데이터로 시공간의 차원 수를 셌다.
방법은 거리를 두 번 재는 것이다. 중력파의 세기로 한 번, 빛으로 한 번. 중력이 오는 길에 새어 나갔다면 중력파가 약해져서, 실제보다 멀리 있는 것처럼 나와야 한다.
두 거리는 맞았다. 계산된 차원 수는 허블상수를 무엇으로 잡느냐에 따라 4.02 또는 3.98이었다. 공간 셋에 시간 하나, 우리가 아는 그대로다.
시험을 빠져나간 모형
여기까지만 보면 인터스텔라의 5차원은 틀린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논문 뒷부분에 단서가 하나 붙어 있다.
영화가 빌려온 것과 같은 계열인 랜들–선드럼 모형은 이 관측으로 거의 걸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들이 직접 적었다.
이 모형은 처음부터 중력이 거의 새지 않도록 짜여 있다. 5차원이 있어도 중력은 대부분 우리 우주에 머문다. 킵 손의 책도 이 방식을 따른다.
옆방을 떠올리면 쉽다. 옆방이 있어도 문이 꼭 닫혀 있으면 소리가 넘어오지 않는다. 벽에 귀를 대봐도 아무것도 안 들린다. 그렇다고 옆방이 없는 건 아니다.
두 실험이 한 일이 벽에 귀를 댄 것이다. 아무 소리도 안 들렸지만, 그것만으로 5차원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여기서 앞뒤가 안 맞는 데가 생긴다.
이 모형이 실험을 통과한 건 문이 닫혀 있어서다. 그런데 영화에서 쿠퍼는 바로 그 문 너머로 딸의 방에 신호를 보낸다. 닫힌 문으로 쪽지를 건네는 셈이다.
둘이 어떻게 함께 성립하는 지는 모르겠다. 하나는 확실하다. 부모의 사랑은 모든 것을 초월한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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